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근대 조각의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나는 재발견할 뿐이다.” – 오귀스트 로댕.
안녕하세요? 스토리로 보는 미술 이야기 다섯번째로, 오늘은 근대 조각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을 소개하겠습니다. 스토리로 보는 미술이야기 첫번째로 소개된 '자코메티'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예술가이기도 하죠. 자연스러운 근육의 움직임, 불완전한 표면에 담긴 고뇌, ‘생각하게 만드는 조각’을 탄생시킨 그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을 통해, 로댕이 어떻게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는지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죠.
작품 이야기 1: 논란과 명성을 동시에 – 「청동시대」
로댕의 첫 번째 대형 조각 작품인 〈청동시대〉는 그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작품이자, 동시에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청동시대〉는 실제 크기의 젊은 남성 누드를 다룬 조각입니다.
근육질의 남성이 한 손을 들고 서 있는 이 조각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면서도 생생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마치 다음 순간에라도 숨을 쉬고 움직일 것 같은 이 형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고전미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듯한 인상을 줍니다.
조작 의혹?! – 너무 사실적이라서 생긴 오해
문제는 바로 '사실성'이었습니다. 1877년 이 작품이 살롱전에 출품되자, 로댕은 엄청난 의혹에 휘말립니다.
“이건 모델을 보고 만든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몰래 석고로 떠서 만든 거다!”
즉, 모델을 밀랍으로 감싸 석고본을 그대로 따낸 ‘몰드 주조’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이죠. 로댕은 자신의 순수한 조각 기술로 만든 것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로댕은 실제 모델을 데려와 비교 설명을 했고, 결국 그의 명예는 지켜졌습니다. 그만큼 생명력 넘치는 조각, 그게 바로 로댕의 〈청동시대〉였던 것이죠.
작품의 제목도 나중에 붙여졌다고요?
처음엔 이 작품에 제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해와 논란이 일자, 비평가와 전시 관계자들은 제목을 붙이기로 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청동시대 L'âge d'airain〉. 프랑스어로 ‘청동기 시대’를 의미하죠.
고대 청동기 시대의 이상적 인체미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의미와 함께, 작품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혹자는 논란의 종식을 위해 로댕이 나중에 작품 이름을 부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전시되어 있나요?
〈청동시대〉의 다양한 주조본은 현재 파리 로댕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브뤼셀 왕립미술관 등에 전시되어 있으며, 작품마다 미세한 차이를 지니고 있어 감상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작품 이야기 2 : 로댕 평생의 집착 – 「지옥의 문」

하나의 문, 하나의 세계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야심이 담긴 작품이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높이 약 6.5미터, 너비 4미터가 넘는 이 청동 대문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문이죠. 그 위에는 180명이 넘는 인간 형상들이 서로 뒤엉켜 고통, 절망, 유혹, 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7년에 걸친 집착의 기록
이 작품은 1880년 프랑스 장식미술관의 주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새로 지을 미술관의 입구로 계획되었지만, 프로젝트가 취소된 후에도 로댕은 이 문을 멈추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무려 37년. 그는 7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 문을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채 생을 마쳤고, 사후에 그의 원형을 바탕으로 주조되며 비로소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죠.
작품 전체를 펼쳐보면
이중 문 양쪽에는 마치 지옥의 계단처럼 인간들이 뒤얽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떨어지고, 어떤 이는 올라가고, 또 어떤 이는 서로를 끌어안고 절규합니다.
조각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서사를 갖고 있고, 그 중 일부는 로댕의 또 다른 유명 작품으로 독립되기도 했습니다.
- 「생각하는 사람」 – 문 위 중앙에 앉아 지옥을 내려다보는 단테의 모습
- 「세 개의 그림자」 – 문 위 가장 꼭대기에서 아래를 가리키는 세 인물
- 「입맞춤」 – 죄로 인해 지옥에서 영원히 포옹하게 된 연인
조각된 건 인간의 ‘지옥’이 아니라 ‘존재’
로댕은 단순히 단테의 지옥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고통, 불안, 죄책감, 욕망 같은 인간 내면의 감정 그 자체를 조각한 것이죠.
지옥은 죽은 자의 세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 내면의 풍경입니다.
예술가의 실험실이 된 문
〈지옥의 문〉은 단순한 조각이 아닙니다. 이것은 로댕에게 있어 일종의 ‘작업실’이자 ‘실험실’이었습니다. 이 문은 닫힌 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활짝 열어젖힌, 가장 깊은 문을 의미합니다 . 이 문 속에서 태어난 수십 개의 소조들은 따로 떼어내어 각각이 하나의 명작으로 탄생했고, 로댕의 미술관을 채우는 수많은 조각의 모태가 되었죠.
진품이 전시된 곳은?
- 파리 로댕 미술관 – 가장 유명한 청동 주조본
-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 로댕 미술관이 직접 기증한 복제본
- 필라델피아 로댕 박물관,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 등
작품 이야기 3: 전 세계를 사유하게 만든 조각 – 「생각하는 사람」

근육질의 남성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습니다.
구부정하게 몸을 숙이고, 시선은 아래로 떨어져 있고, 발가락까지 긴장감이 흐르죠.
그는 단순히 앉아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사유하고, 고민하고, 고뇌하고 있습니다.
조각의 표면은 거칠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 거친 표면 속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1888년 독립된 작품으로 확대되어 공개되었습니다.
원래는 ‘지옥을 바라보는 단테’였다
이 조각은 처음부터 단독 작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위에서 살펴본 〈지옥의 문〉의 상단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지옥의 문을 한번 다시 살펴보실까요? 당시에는 『신곡』의 단테가 지옥을 내려다보며 고뇌하는 모습으로 기획되었고, 이름조차 없었죠.
하지만 로댕은 이 인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립적인 감정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단독으로 확대 주조되며 ‘Le Penseur’ (사유하는 자, The Thinker)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작 자체는, 지옥의 문이 제작된 1880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철학자? 시인? 예술가? 고뇌하는 인간?
이 조각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조각 앞에 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게 되죠. 마치 거울처럼 우리 안의 고뇌와 사유, 선택과 책임을 비추는 존재. 그것이 로댕이 말하고 싶었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단지 앉아 있는 조각상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내면, 갈등, 철학을 한 몸으로 품은 존재입니다.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이유
로댕은 일부러 조각의 표면을 거칠게 남겼습니다. 마치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가 정돈된 아름다움이 아닌, 불안하고 복잡하며 갈등적인 과정임을 보여주듯 말이죠. 미켈란젤로의 정교함과는 다소 대비되는, 이러한 로댕의 몇번 덜 깎인 것과 같은 조각 기법은 오히려 작품에 감정과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또, 이후 자코메티 같은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전 세계로 퍼진 사유의 상징
- 파리 로댕 미술관 정원 – 가장 잘 알려진 오리지널 청동상
-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 마쓰카타 고지로의 수집품으로 전시
- 필라델피아, 브뤼셀, 부에노스아이레스, 예일대학교, 스탠포드 등 – 복제본이 공식적으로 배치됨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은 전 세계적으로 약 28개의 대형 청동 주조본이 존재하며, 이 중 일부는 로댕 생전에 제작되었고, 나머지는 사후에 로댕 미술관의 감독 하에 제작되었습니다.
“예술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로댕의 어린 시절과 예술가의 길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난 로댕은 예술학교 입시에 세 차례 낙방할 만큼 전통 교육에선 늘 이단아였어요. 조각가가 되기까지 그는 장식 미술가로 생계를 이어가며,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죠.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청동시대>가 전시되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예술계의 갈등과 대중의 반응
로댕의 조각은 당시 미술계에서 너무 ‘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청동시대>는 실제 사람의 몸을 본떠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죠. 하지만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곧 전 세계로 퍼졌고, 평단과 대중의 입장을 오가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로댕의 조각 철학 – 재발견의 미학
“나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는다. 나는 재발견할 뿐이다.”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다만 우리의 눈이 그것을 다 포착하지 못할 뿐이다.”
로댕은 조각이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경험 속에 이미 존재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외형보다, 인간 내면의 고통과 사유, 감정을 끌어내는 데 집중했죠. 그의 조각 표면이 거칠고 미완처럼 보이는 이유도 바로 그 ‘감정의 진동’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조각은 단순한 인체 표현을 넘어서서,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시각화한 시도였습니다.
자코메티와의 연결고리
로댕의 철학은 후대 조각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요, 특히 자코메티는 로댕의 ‘형태보다 사유 중심의 조각’에서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에서도 로댕식 고독과 내면 표현이 이어져 있죠.
마무리하며 – 조각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
로댕은 한 조각가의 이름을 넘어 ‘근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예술이 삶과 동떨어진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고뇌와 움직임, 내면의 진동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던진 질문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어느새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조각 속에서 말없이 울리는 그 깊은 질문들 —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어쩌면 그의 작품들은 우리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끝까지 함께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