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토리로 보는 미술 이야기 4: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이미지의 배반'

sding's 2025. 6. 5. 02:35

 

익숙한 현실을 뒤집은, 르네 마그리트

 

여기,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인식을 무너뜨려준 예술가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토리로 보는 미술 이야기 네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일까?"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 질문을 평생 던진 화가입니다. 오늘은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에서도 특히 빛과 어둠, 현실과 상상이 공존하는 작품 ‘빛의 제국’과 이미지, 사물, 언어 간의 거리를 말해주는 '이미지의 배반' (+인간의 아들, 연인의 키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마그리트와 초현실주의, 조금은 다른 거리감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작가로 분류되는데요.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샐바도르 달리처럼 녹아내리는 시계나 난해한 몽환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마그리트는 조금 달랐어요. 그는 비논리적인 환상을 쫓기보다는, 오히려 논리적이고 평범한 이미지들을 ‘낯설게’ 재구성했죠.

그의 그림에는 꿈같은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차가운 이성과 시적 상상력이 공존합니다. 보통의 풍경, 일상적인 사물이지만,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이질감이 툭 하고 튀어나오는 그런 그림이요.

 

작품 이야기 1  - 빛의 제국 (Empire of Light)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기초로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빛의 제국의 화면 위쪽을 보면, 맑고 평온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들이 떠 있고, 분위기는 정말 전형적인 밝은 낮의 하늘이에요. 그런데 화면 아래쪽, 그 하늘 아래 자리 잡은 길가의 풍경은 완전히 ‘밤’입니다. 나무들 사이로 저택이 서 있고, 창문은 어둡고, 길가의 가로등만이 노란 빛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죠.

 

둘은 한 화면 안에 있지만, 빛과 어둠, 낮과 밤, 현실과 환상이 완벽히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어요. 이 부조화 속의 조화, 그 미묘한 긴장감이 바로 마그리트의 매력입니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는 낮의 하늘 아래, 밤처럼 어두운 거리와 창문마다 불이 들어온 집들이 있습니다. 마치 두 개의 시간대가 한 캔버스 안에 공존하듯, 현실이 아닌 듯 현실 같은 장면이 펼쳐지죠. 이 작품은 총 17개의 버전으로 제작되었고, 그중 하나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그 경이로움 자체가 시(詩)”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이상한가요?

 

낮의 하늘과 밤의 거리 — 둘 다 진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물리적인 현실에서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우리는 눈으로 본 걸 믿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그림 속 상징과 철학은?

 

그림에서 "하늘(낮)"은 이성, 명확함, 현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거리(밤)은 무의식, 감정, 잠재의식을 상징하죠. 두 세계는 물리적으로는 충돌해야 하지만, 마그리트는 이 둘을 한 화면에 부드럽게 겹쳐서 배치합니다.
그는 이 모순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 명확함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 그림은 단순한 시각적 트릭이 아니다. 낮과 밤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빛의 제국〉은 이중성 그 자체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단지 초현실적인 ‘이상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신념, 세계에 대한 해석을 유예하게 만드는 시각적 철학이죠.“당연했던 것이 낯설어질 때, 우리는 진짜 생각을 시작한다.” 마그리트는 늘 그랬듯이,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믿고 있던 '현실'을 뒤집고 그 안에서 생각과 질문이 움트게 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품 이야기 2이미지의 배반 (The Treachery of Images)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을 기초로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

캔버스 중앙엔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갈색 파이프가 있습니다.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목재 파이프에 금속 느낌이 나는 입구 부분까지 정교하게 그려져 있지요. 그림자의 표현도 있어 마치 파이프가 캔버스 위에 진짜로 놓인 듯한 입체감을 줍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어요: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딱 봐도, 눈에 보이는 건 파이프인데요? 왜 아니라고 하는 걸까요?

 

마그리트가 던진 철학적 질문

 

이 작품은 마그리트의 유머이자, 아주 깊은 언어와 인식에 대한 철학적 도발입니다. 마그리트는 말합니다.

“물론 이건 파이프가 아니죠. 파이프 그림일 뿐이니까요. 이 그림으로 담배를 피울 수는 없잖아요?”

즉, 그는 우리가 이미지를 보는 방식, 그리고 언어가 이미지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비틀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파이프의 그림을 보면 “파이프”라고 말하지만, 그건 파이프의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곤 하죠.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인식을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 파이프 그림 = 파이프다 → ❌ (틀림)
  • 파이프 그림 = 파이프의 이미지다 → ✅ (맞음)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단순한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니라, 언어학, 기호학, 심지어 현대 광고나 미디어 리터러시까지 영향을 준 시각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다’고 착각하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이미지와 사물, 말과 인식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마그리트의 의도

 

그는 그림을 단지 '그림'으로 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림은 말처럼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믿고, 읽고, 오해하는가'를 드러내는 도구였죠.

 

 

“사람들은 내 그림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림이 아니라 세상이 복잡해서 그렇다.”

–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아들 (The Son of Man)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을 기초로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중절모를 쓴 남자의 얼굴 앞을 떠다니는 초록색 사과. 얼굴을 가린 채 정면을 응시하는 이 인물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마그리트는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어요. 사람은 결국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것, 바로 그 진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건 현대인이 겪는 소외, 익명성, 거리감에 대한 시각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듯하지만 끝내 모르는 것 — 그것이 곧 인간이 아닐까요?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사과 뒤의 정체

 

그림속의 중절모 신사는 마그리트 자신을 닮은 인물입니다. 마그리트는 여러 작품에서 이 '무표정한 신사'를 반복해서 등장시키는데요. 자신의 분신이자 '익명의 현대인'으로 이 인물을 사용했습니다. 재밌죠? 이 신사는 특별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인간의 표준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떠 있는 사과

 

왜 하필 ‘사과’일까요?
사과는 예술, 종교, 신화 속에서 여러 상징을 지닙니다. 아담과 이브의 금단의 열매이자, 뉴턴의 중력의 발견으로, 지식, 유혹, 금기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는 이 사과를 얼굴을 가리는 장치로 사용함으로써, "사람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존재다"라는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뭔가를 보면 그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지만,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은 아니다.”

 

 

연인의 키스 (The Lovers)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의 키스'를 기초로 AI가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얼굴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어요. 

마그리트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조차,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합니다. 사랑하면서도 보이지 않고, 다가가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 그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초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무엇인가를 가림으로써 사실 더 많은 이야기(상상)를 들려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28년경 이 작품이 제작될 당시, 유럽 사회는 전쟁 후의 상실과 불신,새로운 사회적 관계 속의 소외를 겪고 있었죠.〈연인의 키스〉는 그 시대의 감정적 불안과 소통의 단절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이 천이 마그리트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 그의 어머니는 자살한 채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당시 천으로 얼굴이 덮여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이 이미지가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해석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며 뚜렷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보는 것 뒤에는 항상 무언가가 숨어 있다.”



 

 

마무리하여 –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보는 방법

 

왜 사람들은 마그리트를 좋아할까요? 그림을 보고도 끝없이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그리트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우리가 사물을, 그리고 서로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요히 드러냅니다. 마치, 어려운 철학책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지 않으세요? 언제나처럼… 끝까지 함께 작품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